이사벨라 프림로즈:(가볍게 휘파람을 분다.) 이게 얼마만이야? 보고 싶었어!
이사벨라 프림로즈:오늘의 다짐! (이것도 오랜만이네. 자켓 주머니 안에 습관적으로 손을 찔러 넣어본다.) 아무튼간에 지지 않는 걸로 하자.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들은 대교에서 인도와 차도를 가르는 펜스.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면 마리에타가 운전대를 잡고 있습니다.
이사벨라 프림로즈:응? (갸웃...) 벨도 모르는 사이 깜빡 잠들었나?
지금은 좀 어때?
이사벨라 프림로즈:지금? 내 몸 상태 말이야? (특별할 게 있나? 생각해본다...)
이사벨라 프림로즈:(잘 모르겠지만...) 음, 적어도 덕분에 푹 잔 것 같아.
잠에서 갓 깨어났을 때, 약간 몽롱한 기분 정도일까요.
자기 전에 뭘 하고 있었는지도 잘 떠오르지 않는 걸요.
마리에타 에단:그러면 다행이고. (작게 웃는다. 어딘가 아프거나 안 좋은 게 아니라면... 안도했다.)
꽤 오래 일어나지 않아서 좀 걱정했거든.
이사벨라 프림로즈:... 나 며칠째 밤이라도 샜던가? (덜 깨서 지금 이렇게 어리둥절한 상태인 건가? 제 몸을 한번씩 점검해본다. 음, 경험적으로 영영 못 깨어날 만큼 아프진 않은 모양새다. 어디 다친 곳도 아마 없는 것 같고...)
너, 몸 상태든 기분이든 안 좋아도 잘 이야기 안 해주잖아.
내가 미국으로 간 뒤로 더 그렇지?
이사벨라 프림로즈:아하핫! 뭐야아. 그런 거였나아... (저도 모르게 목소리 높여 웃었다가 약간 기어들어간다.) 아니, 별 일 아니기도 하고. ... 큼, 너한테 듣고 싶지 않네. (말 돌리기)
그건 그렇고! 우리... (어디 가던 길이었지? 와, 어쩐다. 진짜 하나도 기억 안나잖아.) 어디쯤 온 거야?
마리에타 에단:별 일 아니라니, 너에 관련된 건데 어떻게 별 일이 아니야? 난 너흴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어, 벨. ...
(말 돌리는 데 약간의 불만이 목소리에 서렸다가 사라진다.)
자동차 앞 유리로 보이는 풍경은 맑기만 합니다.
도로는 표지판 하나 세워진 것 없이,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사벨라 프림로즈:알지. 현장이 항상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여기서 딥하게 들어가면 끝도 없이 들어간다. 쉽지 않구만~... 상황은 내 힘으로 바꿀 수 없고, 가용할 수 있는 재원이 나밖에 없으면, 뭐, 아마 무리라는 걸 했나 보다. 창 밖을 슬쩍 바라보다 그대로 넋을 놓는다.)
(음, 이런 날씨에 드라이브라니... 얼마만이지?) 응?
... ... 뭐야?
이사벨라 프림로즈:SAN Roll기준치: | 65/32/13 |
굴림: | 5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마리에타 에단:(어디로 가고 있냐는 물음에 입을 다물고 앞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이사벨라 프림로즈:음, 어.... (조용히 울리는 자동차 엔진 소리가 착 내려앉는다. 우리가 같이 있을 만한 상황이 뭐가 있었던가? 번잡스러운 머리를 비우려는지 괜히 자동차 라디오를 달칵달칵 만져본다.) 차 바꿨어?
마리에타 에단:음, 아무래도 지부를 옮기면서 계속 차를 가지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애매모호한 대답이 이어지는 느낌이다.)
백미러에는 곰돌이 키링이 걸려 있고, 약한 라벤더 향이 감도는 것 외에는요.
자동차 라디오에선 이름 모를 잔잔한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이사벨라 프림로즈:(파견근무 치고는 꽤 인원이 적은 것 같기도 하고... 뒷머리를 긁는다. 머리라도 맞았나?) 있잖아... (서두를 열었다가 머뭇거린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어떻게 지냈어? 되게 오랜만에 보는 기분인데. (분위기가 좀 변했다고 느끼는 건 나 뿐인가?)
마리에타 에단:(마리에타는 히어로로 근무할 적보다는 훨씬 편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히어로로서의 상징인 흰 망토도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사람들이랑 적응하느라 좀 고생도 했던 것 같아. 그래도 모두들 잘 해 주셔, 내가 해온 일들을 인정해 주시고.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대로이기 때문에, 짧게 고개 돌려 당신을 보고 웃어 줄 수 있었다.)
(그 미소만큼은 익숙한 것이다.)
이사벨라 프림로즈:(영화 스크린 밖에 선 배우 같은 모습에,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 여길 수 있는 여유가 마음 속에 머무름에 안심하면서도, 어떤, 자신의 이상과는 별개로, 멀리 떨어져 걸어감을 약간 쓸쓸하다고 느끼는 건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다. 정말로... ... 나도 모르게 감상에 젖어 버렸는데. 잠깐만, 옷 주머니에 업무용 휴대전화가 있나?)
주머니에서 어렵지 않게 휴대전화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사벨라 프림로즈:(일단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는 알아야 하니까... 휴대전화를 꺼내 캘린더를 체크해본다. 옆자리 운전자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지만, 왠지 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기도 하고...)
이상합니다. 캘린더를 눌러도 오늘 날짜가 제대로 뜨지 않네요.
이사벨라 프림로즈:다행이네... (두 가지 생각에 모두 몰입하느라 주어진 대화 주제에 답이 한참 늦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하지만 목소리 톤에 몰입이 빠져있다. 좀 얼이 빠진 듯이... 손가락만 분주하다. 전파는?)
이사벨라 프림로즈:어아악! 악! 뭐야?! (내 핸드폰!)
그것을 부수고, 대교의 안전 펜스를 넘어, 추락합니다.
온몸의 장기들이 한쪽으로 쏠리는 감각이 느껴집니다.
이사벨라 프림로즈:잠깐만! 마리에타아아아악 (동반자살~?!)
그러면서도 그렇게 자동차째로 허공을 비행하는 마리에타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해서...
첨벙, 차체는 대교 아래의 강물 속으로 천천히 빠져들어 가고, 내부는 일순 푸른 어둠에 잠깁니다.
이사벨라 프림로즈:(살면서 이런 상황에 처할 거라고 상상도 못 해 봤었는데.) 잠깐만, 나, 어...
그러니까, 물이 다 차오르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이사벨라 프림로즈:내 여권을 말소할 필요가 있는 거라면, 미리 얘기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않아?
나... 안 죽지?
마리에타 에단:하하,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소리부터 나와?
이사벨라 프림로즈:... 응? (안전벨트를 벗겨낸다. 물에 완전히 빠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할 지... 아니, 이거 물이잖아?! 진짜 패닉! 패닉이라 제정신 아닌 말만 하는 거니까!)
벌써 어깨쯤까지 물이 차올랐지만, 마리에타는 태연한 모습입니다.
이사벨라 프림로즈:아, 그래. 할 수 있어 벨, 네 친구가 좀 아파도, 수압으로 지금은 못 여니까 차가 완전히 잠기면 때 차 문 열고 숨 참고 수면으로 올라가면 돼! 마리에타, 괜찮아!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숨을 들이마시고, 물 아래로 잠기기 전에 마리에타는 딱 한 마디만 당신에게 전합니다.
시야가 푸른 물결에 잠기고, 입 밖으로 나온 숨이 공기방울을 만들어냅니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딱딱한 테이블의 감촉.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고개를 듭니다.
작은 원형 테이블에 조그만 케이크가 하나, 홍차가 둘.
하나는 당신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당신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의 것이겠지요.
이사벨라 프림로즈:(벌떡! 일어나 몸을 만진다...) 뭐야? ... ... 뭐야? 병원?
마리에타는 당신 맞은 편에 앉아, 홍차에 각설탕을 넣고 티스푼으로 휘저었습니다.
마리에타 에단:“일어났어?” 하고 아직 물어보지도 못했는데.
당신의 몸은, 대교 아래로 차량이 추락하는 사고를 겪은 사람이라기엔 지나치게 멀쩡합니다.
부딪힌 부분의 통증이 방금 전까지 생생했는데 말이죠.
병원이라기엔, 주위를 둘러보면 환자도 의료진도 없습니다.
우리가 함께 수업을 듣던 시기에, 이런 휴게실이 있지 않았던가요?
이사벨라 프림로즈:어어? 아니... (팔꿈치며 홱 돌려 몸을 한 번 본다. 꿈은 아닌데.) 그럴 얘기 할 만큼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 않아?
... 훈련이었어? (자리에서 일어나 두리번거린다.)
마리에타 에단:훈련이라니... 나는 휴가 중인걸.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가늠하는 듯한 눈을 한다.)
(마리에타는 차를 한 모금 입 안으로 넘기고, 당신 앞의 찻잔을 가져다가 각설탕을 넣어 녹인 뒤 앞 쪽으로 밀어 줬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이사벨라 프림로즈:(한숨을 깊게 한 번 내쉰다.) 맞다고 해, 차라리... 마리에타, 나도 더 안 묻고 싶어.
조금 미지근한 것이, 따른 지 시간이 조금 지난 듯합니다.
마리에타 에단:하지만, 아닌 걸 맞다고 할 수도 없잖아. 벨.
이사벨라 프림로즈:환각인지 장난인지는 몰라도... 너답지 않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좀 혼란스럽네. (검지로 찻잔 모양을 덧그린다.) 너도 알겠지만, 우린 직업상 별로 믿을 사람이 없잖아.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널 떠올리게 되기도 하고. 초연한 얼굴에서 의도를 읽을 수 없어 당혹스럽다.) 그러니까, ... (아, 젠장, 중얼거리고,) ... 혹시 여기 각설탕 말고 뭐 넣었어? 알기라도 하자.
아냐, 알려주지 마. 아냐, 아냐. 아냐! 못 들은 걸로 해. 미치겠네.
마리에타 에단:나는 네가 알아채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자신답지 않은 행동인 걸 알고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신뢰를 잃고 의심받기에도 충분한... 조금 전엔 그 방법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충동적인 일을 벌였는데도 지금같은 반응이라면...)
(최대한 태연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머릿속에서 되뇌여도, 오랜 친구를 마주하는 목소리가 떨려 나온다.) 벨. 나를 의심해?
(낯에서 서글픔이 묻어나온다.)
이사벨라 프림로즈:(얼굴을 양 손으로 한 번 감싸고 그대로 머리를 밀어 올린다. 두어 번 턴다.) 아, 제발. 그런 표정 짓지 마. 벨이 잘못한 것 같잖아… 직업병이라 그래. 맞아, 이것도 다 비겁한 말이지만. 하지만... 나도 무섭단 말이야.
... 마지막에 분명 죽지 않는다고 했지?
마리에타 에단:우리가 하는 일이 그런 걸 나도 알고 있어. 이해해...
한 번 잘못된 판단으로 사선을 넘어간 영웅이 몇인데.
하지만, 벨.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 나를. 네 친구 마리에타 에단을... 한 번만 믿어줄 수 있어?
네 말이 맞아. ... 너는 죽지 않아. 내가 그렇게 두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부탁할게.
마리에타의 시선이 당신 앞에 놓인 찻잔에 닿습니다.
이사벨라 프림로즈:(아까에 비해 옅은 한숨을 쉰다. 다만 두려웠던 것은 내 삶이 진정 끝을 맺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내가 가치 있다 여겼던 관계들이, 믿음이 내 끝을 근거로 부정당할까봐. 그만큼 나 역시 기꺼이 내맡길 만큼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만 확인하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참, 그래. 알았어. 넌 참...
(먼저 줄어든 잔을 바라본다. 적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데에서 안심하다니...)(좋아요, 뭔지 몰라도. 잔을 비웁시다.)
마리에타는 잔을 내려놓고 당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혼자 마시게 둘 순 없으니까.......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요, 죽음이 가까이에 있습니다.
당신의 맞은편에 앉은 마리에타가 당신을 끌어안습니다.
당신이 누운 지면이 물소리와 함께 울렁입니다.
조촐한 작은 배 위에 몸을 싣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옆에는 마리에타가 앉아있습니다.
하얀 돛을 펼치던 그는 당신을 돌아보며 말합니다.
별들이 총총히 떠 있어 빛나는 별 사이사이를 손가락으로 그어볼 만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을 따라, 우리는 항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벨라 프림로즈:(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앉나 싶더니, 그대로 다시 대자로 드러눕는다.) 좋아. 사후세계? 사후세계로 가는 길인가? 당신은 저승사자고?
이사벨라 프림로즈:독살보단 창의적으로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음, 이렇게 히어로 계의 별이 또 하나 졌네. 둘인가... (약간 체념한 투로 중얼거린다. 사실상 답을 바라지 않는 종류의 담화다.)
마리에타 에단:(배에는 돛과 키가 있지만, 마리에타는 순풍을 일게 하는 것 만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이능력자이니까.)
... 창의적이지 못해서 미안?
이사벨라 프림로즈:아니, 솔직히... 당신이 누구든간에 지금 이 상황에서 뭐라고 해야 할 지 고민이 좀 되네...
왜 하필 벨이었어?! 이런 세상에. 아니, 어머, 못 본 새에 그렇게 된 줄 알았으면 드라이브고 나발이고 당장 네 상사를 고소했을 거야!
염병할 블랙기업 같으니! 내 친구가 기어이 날 이승에서 퇴근시켰다고, 영영. 어머니, 세상에... (전기라도 통한 것처럼 벌떡 일어나 무어라 손을 휘젓다가, 그냥 다시 얼굴을 묻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기왕인겸 체리 타르트로 부탁하는 건데.
좋아. 이제 말해도 돼. 좀 정신이 드는 것 같기도? 아니, 확신은 없는데...
마리에타 에단:(마리에타는, 제 친구 앞에서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멈췄다. 그저 다가가서, 이사벨라가 얼굴을 가리고 있는 손을 잡아 쥐는 수밖에.)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그렇게 있었다. 물살을 가르고 나아가는 뱃머리가 수면 위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하늘 위에 있는 별이 두 사람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 정말 말해도 돼?
이사벨라 프림로즈:(뿌리치지 않은 채로 가만 앉아 있다가, 고개를 위로 젖혔다. 솔직히 지금 이 상황에서 네 얼굴을 마주볼 자신이 없었다. 누가 멀리서 보면 정신 나간 쪽은 분명 나라고 생각하겠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감도 안 잡힌다...) 솔직히, 이미 여긴 무간지옥이고 회개할 때까지 계속 죽어야 한다는 말만 아니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죽어서 속죄한다든가 보상받는다는 말 난 안 믿거든.
... 응, 그래, 이제 말할 수 있어? (실은 준비를 해야 했던 건 자신 쪽이었다. 들을 준비가... 되었는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마리에타 에단:어디까지 이야기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네가, 들어야 할 것 같아. 내 친구가 제정신이 아니게 되는 건 원하지 않으니까.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는 건 원래도 내가 잘 하는 게 아니었잖아. 우린 스무 살에도 함께 많은 이야기를 했었고... 그게 도움이 됐으니까.
들을 준비가 된 건 맞지?
(괜히 가볍게 한 번 더 묻는다.)
이사벨라 프림로즈:... 마리에타, 난 방금이나 지금이나 제정신이었어. (뭐, 적어도 친구가 건넨 독이 든 홍차를 원샷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야...) 제발 말해줘. 네가 무슨 생각인지 알아야겠어.
이사벨라 프림로즈:솔직히... 이승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아. ... 지금 생각해 보면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전에... 벨. 너는 한 번 죽었었어.
(마리에타의 목소리는 진중하고, 이번에야말로 떨리지 않는다. 그는 진솔한 순간에 가장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이사벨라 프림로즈:그러니까... ... 차를 마시고? (입 밖으로 내뱉고도 되게 얼빠진 질문 같이 느껴진다. 음, 그치. 죽었지...)
마리에타 에단:... 아니, 대로에서 깨어나기 전에.
내가 미국에서 대만으로 돌아와 너를 만나러 가던 날, 사고가 있었어. 당시 현장에 있는 이능력자들이 수습하기 힘들 정도로 큰 건물이 붕괴하는 바람에...
무너진 건물 조각으로 인해 피해자가 여러 명 생겼지. 너도 그 중에 하나였고.
여긴 널 다시 되돌려놓기 위해서 내가 만든...
김감자:지능기준치: | 65/32/13 |
굴림: | 4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분명, 자동차 안에서 깨어나기 전 마지막 기억은
붕괴 위기의 건물에서 시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중이었으니까요.
마리에타가 미국에서 올 거라고 남겨 뒀던 문자를 당신은 일을 하느라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지만요.
이사벨라 프림로즈:(어렴풋이 차량에 두고 온 휴대전화가 기억난다. 그랬었던가... 제 기억임에도 어지간히 남의 것처럼 느껴진다. 현실감이 없다.)
먼저 안 좋은 기억을 남겼구나, 내가. 음...
마리에타 에단:사과하지는 마. 네 잘못이 아니잖아.
공항에서 내린 내가 다급한 협조 요청을 듣고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늦었었어.....
... 재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설령, 누군가를 원망한다고 해도 너는 아닐 거야. 벨.
너는 내 곁에서, 같은 길을 걸어주기로 한 나의 친구잖아. 그렇지?
이사벨라 프림로즈:... 마리에타. (마지막 말에 앞선 대화를 떠올린다. ... 되돌려? 나를?)
마리에타 에단:너를 구하기 위해서, 조금, 무모한 일을... 벌였는데...
(말이 드문드문 벌어진다.)
이사벨라 프림로즈:(... 조금 차분하게 말 할 생각이었다. 적어도 당신이 내가 알던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이미 만족했으니까. 그런데... 뭐지? 뭔가 잘 안 들리는데, 기분 탓인가?)
파랑이 높게 일더니 선박 안쪽까지 물이 밀고 들어옵니다
새까만 점액질의 액체가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이사벨라 프림로즈:SAN Roll기준치: | 65/32/13 |
굴림: | 6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사벨라 프림로즈:벨이 천당도 지옥도 못 가는 몸이 됐다고?! (미치겠다 진짜~!!!!)
“저기 봐, 높은 파도가 오고 있어. 저 정도라면, 우리가 무얼 하든 소용없겠지....”
조금 있다가 이어서 이야기하자.
이사벨라 프림로즈:그래... ... 다음이 있다니 감사해야 할까?
당신을 가만히 끌어안는 팔이 있습니다. 등을 쓸어주며... 목소리가 속삭입니다.
마리에타 에단:"영영 못 보게 되는 것보다는 낫잖아." 곧, 배를 완전히 덮고도 남을 만한 큰 파도가 찾아옵니다.
시야는 완전히 검어지고, 당신의 몸이 강한 물살에 밀쳐져, 끌어안은 포옹이 풀어지는 것을 느끼며...
뺨을 간질이는 무언가가 당신의 잠을 깨운 듯합니다.
당신이 잠이 든 동안 덮고 있었던 것은,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
몸을 일으켜서 앉으면, 당신 바로 옆에서, 마리에타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아무런 뒷수습도 생각하지 않은 채 벌어지는 일들...
당신도 이 가능성을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나요?
마리에타는 당신이 눈을 뜰 때마다 줄곧, 일어났냐고 묻고 있는 걸요.
이사벨라 프림로즈:지능기준치: | 65/32/13 |
굴림: | 4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마리에타 에단:네 영혼을 찾아서, 꿈 안에 묶어 뒀어.
널 찾으러 왔다가 나 혼자서는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이사벨라 프림로즈:위험하다는 게... 잠깐만, 그럼 내가 죽으면... (당신을 향하던 손가락이 제 쪽을 향한다.)
마리에타 에단:여기 영영 갇힐 수도 있는 거지.
... 나 혼낼거야?
이사벨라 프림로즈:마리에타! (한 박자 늦게 지른다. 이런...!) 미쳤나 봐!
고마워! 감동했어! 하지만 이건 아니지!
하지만 다행이다, 아, 역시 이게 내가 아는 마리에타지! 근데 무모해!
마리에타 에단:하지만, 널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사실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면 바로 깰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되나 봐.
게다가 그렇게 아플 줄은... 미... 미안하다고 할까?
(어쩌지? 지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렸을 적 툭하면 그랬던 것처럼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다.)
이사벨라 프림로즈:솔직히 죽는다는 게 어떤 건지 감이 안 와서, 아까 같았으면 근엄하게 '난 괜찮아. 히어로로서 죽을 수 있던 걸 영광으로 생각해...' 하고 나불거렸을 텐데 솔직히 지금은 잘 모르겠어. (깜빡...)
좀 많이 죽은 것 같아. 이대로 끝나도 감이 안 올 것 같고... 어쩜 울긴 또 왜 울어. 어떻게 해야 할 지 나도 모르겠잖아.
하지만 어떻게인지는 몰라도, 살아서 가야겠구나. 넌 참, 말도 없이 무모한 면이 있어... (손수건 같은 게 있나 주머니를 뒤지다 그냥 옷 소매로 툭툭 두드려 닦아준다.)
마리에타 에단:('살아서 가야겠다'는 말을 듣자, 그제서야 안심하고 제 친구를 와락 끌어안을 수 있었다. 뺨을 타고 눈물이 방울져 떨어진다.) 나는 영웅답게 죽은 '히어로 벨'이 아니라 내 친구 이사벨라 프림로즈가 필요한 거란 말이야... (그리고 마리에타 에단은 서러운 울음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다. 우리는 빠르게 어른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스무 살이 넘어서부터는 목놓아 울을 일조차 속으로 소리를 삼키기 일쑤였을 터였다. 이건 오랜만에 마음을 완전히 드러내는 일이었다.)
(훌쩍임이 잦아들 때 즈음, 끌어안은 팔을 고쳐 쥐고서 중얼거린다.) 주문은, 벗어나려는 의지를 품는 걸로 깨어날 수 있다고 했어... 하지만 나 혼자서는 안 돼.
너는 이제 여기가 꿈이란 걸 알았잖아, 벨.
어떻게 하고 싶어?
이사벨라 프림로즈:(네 등을 천천히 두들긴다. 저라도 무서웠을 것이다.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냥. 항상 그랬듯 상황은 우리 마음처럼 되질 않고. 누군가를 안심시키기 위해, 마지막 위로로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짐짓 어른스러운 체를 했을 뿐. 실은 나를 떠올리며 누군가는 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그보다도 살고 싶었어. 콧잔등이 시큰해져 살짝 고개를 위로 올린다.) 미안해. 내가 정말.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고개를 살짝 숙인다.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내놓는 건 항상 남은 이들에게 짐을 안겨주는 것과 다름 없으니까. 우리들은 그 또한 너무 잘 알았던 것 같다.)
그걸 말이라고 하니. (훌쩍임을 애써 그치고 시답잖은 핀잔을 준다.) 이런 말을 듣고 됐고 죽으련다 하면 제정신이 아니지.
가자... (제 눈가를 한 번 훔친다. 아 부끄러워.) 이만 돌아가자.
살고 싶다는 말을 은연중에 마음 속 깊은 곳으로 밀어넣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입에서 그 말이 뱉어지는 순간, 마리에타는 당신을 꽉 한 번 힘주어 끌어안습니다.
언제부터 우리는 이런 꿈을 꾸기 시작했을까요.
분명, 여느 꿈이 그러하듯 나중에는 가늠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평화와 재난 속에서 빠져나갑시다.
부드러운 이불의 감촉, 병원의 침상 위는 익숙함과 동시에 생경하기 짝이 없습니다.
몸을 일으켜보면, 당신의 침대 맡에서 엎드려 잠이 든 누군가가 있습니다.
당신이 기척을 내면, 곧이어 마리에타도 머리를 들어 올립니다.